아버지의 돋보기 안경
어릴 적, 아버지의 돋보기 안경은 항상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. 자주 사용해서 기스가 나고, 렌즈는 점점 뿌옇게 변해갔습니다. 나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왜 그 뿌연 돋보기를 굳이 쓰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. “그냥 새로 하나 사지,”라고 말하고 싶었지만, 쉽게 꺼내지 못했습니다.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보니, 그 이유 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.
어느 날 문득, 아버지의 돋보기안경 을 끼고 책을 보려던 저는 깨달았습니다. 나이가 들면서 눈이 잘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, 그 돋보기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아버지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. 뿌연 렌즈 너머로도 아버지는 세상을 충분히 보고 계셨던 겁니다. 아니, 어쩌면 그 렌즈를 통해 더 깊고 진하게 보이는 인생의 의미를 느끼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.
어린 시절, 바지 자크가 가끔 열려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의아해하곤 했습니다. 이제는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습니다. 나이가 들면서 몸의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게 되기도 하지만, 아버지에게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. 인생에서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지면서, 바지 자크 같은 작은 일들은 그저 흘려보내도 되는 일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.
입가에 묻은 음식물 자국도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. 그 자국은 아버지가 삶의 작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의 흔적일 것입니다. 함께하는 식사 시간, 그 시간 속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아버지를 그렇게 무심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.
나이가 들면서, 아버지의 모습이 조금씩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낍니다. 돋보기가 점점 뿌옇게 변해가는 것처럼, 내 시야도 아버지처럼 변해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.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게 됩니다. 돋보기를 통해 보이는 것은 단순한 글자들이 아니라, 인생의 무게와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들이라는 것을.
이제는 아버지의 돋보기를 통해 내 인생도 들여다보게 됩니다. 그 뿌연 렌즈 너머로 보이는 것은 과거의 기억, 현재의 나,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모습입니다. 아버지가 그 돋보기를 벗지 않고 계속 썼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. 그것은 단지 시력을 보조하는 기구가 아니라, 아버지가 살아온 세월과 함께해온 소중한 시간의 흔적이었기 때문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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